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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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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황산 작성일17-06-22 06:53 조회28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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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의 솔거는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대화가
(大畵家). 그가 화가로서 대성 하기까지의 피눈물 나는
노력은 대단했다.
신라 진흥왕 때 시골 조그만 농가에서 태어난 솔거는 어렸을
적부터 뛰어난 용모의 준수함과 함께 민첩한 그 기질은 사
람들이 실로 범상히 보아 넘기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누구의 눈에도 솔거는 장차 큰인물이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했다.
그는 가난한 집안을 도와 불과 8세의 어린 나이로 밭을
갈고 또 산에 가서 나무도 해오고 해야됐다.
그러나 솔거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나무를 하고
밭을 갈고 하는일 보다도 더 원하고 있었다.
아침에 산에 오르면 늘 칡뿌리를 꺾어쥐고 바위나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근처의 소나무나
날아가는 새모양을 그리곤 했다. 그리하여 해가 솟으면
둥그렇게 해도 그려보곤 했다.
그림을 그리다가 깜짝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주섬주섬
나무가지들을 주워모아 짊어지고 집으로 내려오곤 했다.
또 들에 나가 밭을 맬때는 쥐었던 호미 끝으로 땅바닥에
산이며 밭을메는 소를 그리고 일하는 농부와 점심을 나
르는 아낙네의 뒷모습을 그려보곤 발로 지우고 또 그림
을 그리곤했다.
이렇게 솔거는 그림을 떠난 생활이란 없었다.
산에서도 들에서도 그리고 밥먹을 때도 꿈에서도 그림은
솔거와 항상 붙어다녔다.
그렇게 솔거는 그림이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골 산중에 솔거에게 그림을 지도해 줄 사람은 없었고,
그러한 그가 점점 자라면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 그림을
지도받고 싶었으나 솔거를 가르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날마다 홀로 그림을 그리면서 자기를 가르
쳐 줄 사람이 없음을 슬퍼하며 신에게 기도를 드렸다.
(신이여, 제게 그림을 잘 그릴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저를 가르쳐 줄 분이 없으니 바라옵건데 신께서 제게
가르쳐 주시옵소서)
여러해를 기도했을 때 어느날 밤 그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도 역시 기도를 드리고 있었는데 홀연히 흰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솔거의 손목을 잡으며 말했다.
"솔거야, 너의 지성스런 기도에는 아주 감탄을 했다. 나는
신인단군이다. 내가 네게 힘을 주려니 장차 너는 그림에
성공하여라."
하고는 홀연히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문뜩 잠에서 깬 솔거는,
"아, 이상한 일이다. 그러면 앞으로 나는 신의 힘을 빌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는 얘긴가? .....아 ,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기쁜일인가!"
그는 자기의 지성스런 기도의 결과로 신에게 받음에 기뻐
서 마냥 뛰었다. 그리고 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이렇게 하여 솔거는 마침내 명화공(名畵工) 이 되었다.
이러한 명성에 올랐을 때 솔거는 이 모든것이 신인단군의
도움을 깊이 감사하여 신인의 어진(御眞)을 정성드려 천장
을 그렸으니 그어진은 모두 그가 꿈에 뵈옵던 그대로였다.
이렇게 신의 힘을 입는 솔거의 그림은 그리는 것마다 명화
임에 틀림이 없었다.
어느날 솔거가 경주의 황룡사(皇龍寺) 벽에 큰소나무를
그렸는데 그 나무의 몸둥이는 살아있는 용의 비늘같이 꿈
틀 거리고 가지와 잎이 살아있는듯 바람에 나부끼는 것
같았다.
실물에 비하여 조금도 손색이 없는 이 소나무에 날아가던
참새들이 잠시 날개를 쉬려고 그가지에 앉으려다 떨어져
버린 일도 있었다.
세월이 흘러 채색이 흐려지자 후에 사람들이 그 그림에
칠을 다시 하였더니 지나가던 참새 한마리 찾아들지
않았다고 한다




출생·활동시기·족계(族系) 등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가 뛰어난 화가였음을 전하는 기록과 일화를 남기고 있다.

농가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그림에 뛰어났다고 하며, 그의 활약시기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나 그가 그렸다는 단속사(斷俗寺)·황룡사(黃龍寺)의 완공시기와, 백률사(柏栗寺)의 중수기 가운데 신문왕 때 당(唐)나라 사람 승요(僧瑤)가 신라에 와서 솔거로 개명하였다.

물(物)·생(生)·영(靈)에 극진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봉하였으며, 왕도 조서(詔書)를 내려 솔거로 명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신라시대보다는 통일신라시대에 활동하였던 화가일 가능성이 짙다.

그가 그린 것으로 기록에 전해오는 작품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황룡사의 「노송도(老松圖)」이며, 이 벽화는 노송을 실감나게 잘 그려 새들이 착각하고 날아들다가 벽에 부딪혔다고 한다.

이 밖에 불교회화로 분황사(芬皇寺)의 「관음보살도(觀音菩薩圖)」와 진주 단속사의 「유마상(維磨像)」·「단군초상(檀君肖像)」·「진흥왕대렵도팔폭(眞興王大獵圖八幅)」을 그렸다고 한다. 그리고 관음보살 삼상(三像)을 조각하였다는 기록도 전하고 있다.

황룡사 「노송도」는 소나무의 그림이 생동감 넘치는 사실적인 채색화였을 것이다. 이 일화는 당시에 사실적인 묘사 중심의 회화가 발달하였음을 입증해주는 사례이며, 또 이는 당대의 불교 조각의 사실적 묘사수법의 발전에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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